총 206페이지

6페이지 본문시작

중랑의 동명 유래
구의 중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구문계(舊門契) · 고문계(古門契) · 문계 · 곰계 등으로 불려지던 들판과 목장의
문이 있던 곳으로, 면목(面牧)이란 ‘말목장’ 또는 ‘목문(牧門)’의 소재지로 ‘마목(馬牧)’ 또는 ‘목문
(牧門)’의 의미와 유사하며 목장을 앞에 두었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구의 중앙부에 위치한 동이다.
여러 자연촌 중에서 지역의 위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상리(上里)라는 마을과 지형이 봉황의
날개모양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봉황동(鳳凰洞)이 있었다.
1914년 자연마을인 상리(上里)의 ‘상(上)’자와 봉황리(鳳凰里)의 ‘봉(鳳)’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구의 서쪽에 위치한 동이다.
중화동 동명은 예부터 봉화산 아래 자연마을인 가운데마을(중리)과 아랫마을(하리)의 글자를 따서
중하리로 한 것을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당시 주민들의 요청으로 중화동으로 고친 데서
유래되었다.
구의 북서쪽에 위치한 동이다.
옛날 이곳에서 먹을 제조하였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을
이곳의 동명으로 붙여야 학문이 발달할 것이라는 비기설(秘記說)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구의 동쪽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지점에 있는 망우고개에서 유래하였다.
망우고개는 조선 태조가 사후에 명당을 찾던 중 중신과 제관들을 함께 데리고 검암산(儉岩山)
밑의 능터를 다시 한 번 보고 흡족한 마음으로 환궁하는 길에 망우산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이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되었노라〔어사오우망의(於斯吾憂忘矣)〕.”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구의 북동쪽에 위치한 동이다.
1914년 인근의 여러 마을 이름 중 신현(新峴) 마을의 ‘신’자와 내곡(內谷) 마을의 ‘내’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