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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지명 유래
이 지역은 당초 봉화산과 연결되는 나지막한 구릉지대로 봉화산로27길 일대 (극동아파트)에
있던 재(언덕)에서는 소(牛)의 힘을 시험하던 장소였다는 옛 어른들의 체험담 등이 전해진다.
또 이 마을의 진산(鎭山)인 봉화산에는 봉수대가 있어 조선시대부터 산 이름을 봉화산(捧火山)
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봉우재”라는 마을 이름은 봉화산의 봉자와 소자를 뜻하는 우자,
그리고 작은 언덕이라는 재(치)자가 결합되어 지어져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가정’은 조선시대의 이름난 문학가이자 높은 관리였던 서거정의 호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는
아차산 앞 벌판에 살았고 우리 고장에 살았던 훌륭한 위인을 기리기 위해 호에서 따왔다.
태조 이성계가 건원릉의 묘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다가 한 고개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근심을 덜었다.”라고 말해서, 이성계가 머문 고개를 ‘망우리’라고 하였다..
높이가 348m인 용마산은 아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옛날에는 서울의 ‘외사산’ 이라고
불리며 서울을 방어하는 아주 중요한 산으로 꼽혔다. 외사산은 ‘서울 외곽을 지키는 네 개의
산’이라는 뜻으로 용마산과 함께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이 여기에 속했다고 한다.
면목제2동과 면목본동을 동서로 가로질러 용마산길 교차점까지 이르는 폭 25m 길이 2000m
1984년 서울시의 길 이름을 새로 지을 때 처음 생겼으며, ‘겸재길’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의
최고의 산수화가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호에서 빌려온 것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의 한양입성 관문으로 한양 동북지역인 강원도는 물론이며 경기도에서
한양우시장 지금의 마장동 우시장(도축장)으로 소(牛)를 팔러 오면서 먼 거리를 걸어온 소에게
하룻밤 여물을 먹이고 계곡의 신선하고 풍부한 물과 풀(林)이 있어 중랑천을 건너기 전 쉬어
가던 곳으로 주막 등이 번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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